집에서 일하고 싶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뭔가 자기계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집에 가면 취미로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해봐야지, 이러한 게임을 만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문제는,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생각들이 모두 날아가버린다는 것이다.


요리사는 집에 가면 (요리 하는 것이 지겨워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통계적으로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들었을 때 뭔가 공감이 가는 면은 있다. 그리고 공감이 간다는 것의 의미는 나 또한 그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진력만 가졌던 어린 시절

어렸을 때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공책에 어떤 게임을 만들지 써보고 도트를 찍으며 게임에 들어갈 아이템들의 아이콘들을 그리며 놀았다. 그리고 베이직과 C, C++ 를 배우면서 그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 간단한 비행 슈팅도 만들어보고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펙트까지 만들어서 넣고 하이텔에 배포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소위 말하는 입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 내가 살던 곳은 고등학교도 수능처럼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다 - 그 때부터 더 이상 취미로 게임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 물론 게임 하는 것은 매우 좋아했지만.


추진력만 있으면 되는 지금의 나

사실 게임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게임 제작에 대한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다. 많은 게임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만 가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었다. 마치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제대로 게임을 만든 경험이 없이 조금씩 끄적대다보니 스스로 해봤자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바닥부터 만들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울티마 온라인과 같은 재미있는 게임이 많이 나와서, 굳이 내가 만들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인터넷도 있어 질문할 곳도 많아졌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으로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언리얼, 유니티와 같은 편리한 게임 제작 도구들도 무료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게임을 제작하기에는 더없이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나에게 일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재미있게도 스스로에게 일을 시키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데' 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르다. 그래서 나는 내 뇌에서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다.


동기를 유발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보상이고, 둘째는 처벌이다. 어느 쪽이든 뇌를 움직이지만 매커니즘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보상은 도파민이고, 처벌은 스트레스이다. 먼저 처벌을 하는 방법은 쓰지 않기로 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불편하고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상을 준다면 '자발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판단했다. 게임을 개발하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보상을 하려면 내가 무엇을 했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행위를 했을 때 그 보상을 줘야 한다. 


도파민 공급 수단의 결정

나는 그 수단을 '맥주'로 정했다. 예를 들어, 맥주가 마시고 싶다면 게임을 만드는 행위를 하면 된다. 그러면 나에게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게임을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는 맥주를 어떤 경우에도 마실 수 없도록 했다. 


맥주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나는 맥주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보상에 필수적인 즉시성 - 원하는 행위가 발생되고 보상까지의 시간이 짧을 것 - 과 일관성 - 항상 동일한 품질의 보상을 줄 것 - 을 유지하기에도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과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하루 한 잔의 맥주를 마시기 위해 나는 매일 게임 개발을 하는 행위를 했다. 시원한 한 잔이 생각날 때 컴퓨터 앞에 가 개발 도구를 켰다.


가장 힘든 부분은 게임 제작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맥주를 마시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손만 뻗으면 보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참아내는 것은 상당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그 다음으로 힘든 점은 집중력이었다. 내 생각에 따르면 빠르게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행위를 빠르게 끝내야 했다. 예를 들면, 예비군에 가서 빨리 움직이면 빨리 끝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 말은 아직 게임 개발을 하는 행위 자체가 도파민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파민은 동기 부여와 집중력에 관여한다.


다만 이런 훈련이 좀 더 반복된다면 게임 개발 행위와 보상과의 관계를 뇌가 학습하여, 게임 개발 행위를 장려하기 위해 도파민을 분비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금 더 진행해봐야 할 듯 하다.


마지막으로, '보상'을 미리 받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맥주를 먼저 마셔버리면 게임 개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반드시 끝나고 보상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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