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설명

2023년 04월 22일부터 교차로에서 우회전 시 일시정지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범칙금을 물게 바뀌었다. 정확히는 2023년 01월 22일부터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변경되었으나 3개월 간 계도 기간을 둬 단속을 하더라도 패널티가 없었다가, 이제부터 패널티를 받도록 한 것이다.

변경된 시행규칙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8F%84%EB%A1%9C%EA%B5%90%ED%86%B5%EB%B2%95%EC%8B%9C%ED%96%89%EA%B7%9C%EC%B9%99

 

도로교통법시행규칙

 

www.law.go.kr

사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 시행규칙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아직 업데이트를 안 했나?

문제 의식

왜 이런 법이 생겼는가? 법은 국회에서 만든다. 그리고 국회는 우리가 투표로 결정한 국회위원이 입법을 하는 곳이다. 국회의원은 어떤 이유에선가 우회전 시 일시정지를 하지 않으면 처벌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조사해보았다.

입법 근거

https://www.discovery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946124 

위 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9~2021년) 우회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는 총 56,730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40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라고 한다. 우회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는 하루 평균 약 51건이 발생하고, 사망자는 약 3일마다 1명씩 생기는 셈이다. 우회전하는 차량과 충돌하여 가족을 잃은 사람이 3일마다 한 명씩 생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누리꾼의 반응

내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지만, 반대로 너무나도 뻔하게 예상했던 반응은 이것이다. 우회전 하는 차가 밀려서 교통체증이 심해지니 나쁜 법이라는 뉴스 댓글이다.

모든 사람은 보행자이다. 그리고 운전자는 그 보행자 중 일부이다. 모든 보행자에게 이득이 되는 법을 만들었지만,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반발한다. 마치 자기는 횡단보도를 걷지 않을 것처럼.

물론 반응은 커뮤니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당연한 법이라는 말이 높은 추천수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본 수많은 의견들은 대부분 이런 의견이 많았다.

  • 무단횡단도 처벌해라
  • 보행자가 다 건너갈때까지 언제 다 기다리냐
  • 우회전 줄이 더 길어진다, 교통체증이 더 심해진다
  • 횡단보도를 더 교차로 바깥쪽으로 밀어야 한다
  •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 세금이 모자라서 이렇게 하는가
  • 앞에서 서있지 말고 보행자 없으면 좀 가자
  • 일시정지 했더니 뒤에서 빵빵거린다
  • 우회전 신호등 설치하라

나의 의견

사람이 죽어야 겨우 바뀌는 게 법이라지만, 법이 바뀌고 나서도 반발하는 반응이 너무도 많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타자화 및 감정이입 - 나는 운전하니까 보행자가 아니야

운수업 종사자가 아닌 이상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를 소유했다면 본인을 "비보행자"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운전을 하는 입장에서 우회전 시 나타나는 보행자는 내가 배려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나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피해자 없는 불법은 괜찮아 - 사고를 내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야

내 차와 보행자가 닿은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다. 보행자는 나에게 다가오는 차가 나를 본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틴팅, 썬팅이 많아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운 한국의 환경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내가 상대방에게 주먹을 내질렀지만 안 맞았으니까 무죄라는 것과 같다.

호의와 권리의 착각 - 원래 차도는 차만 다니는 곳이지, 어딜 보행자가 다녀

자동차는 인간 사회에서 아주 최근에 나타난 물건이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보행자가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아스팔트를 깔고 횡단보도로 밀려난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행자가 도로를 우선 점유하고 자동차는 보행자를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면서 이동하려 한다.

반면 자동차 산업을 중요시하는 미국과 한국에서는 원래 차도는 차가 다니는 곳인데 어딜 감히 보행자가 차를 방해하냐는 논리가 강하다.

계층 의식 - 운전자는 무섭지만, 보행자는 무시해도 된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뒤에서 경적을 울리면 엄청 신경쓴다. 왜냐? 다른 차에 대해서는 나랑 동급이니까.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에게는 되려 경적을 울리며 꺼지라고 경고를 날린다. 차에 타고 있는 나 먼저 횡단함으로써 자기가 더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앞에 있는 보행자나 뒤에 있는 운전자나 그냥 똑같은 사람임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댓글에 "뒤에 있는 운전자가 빵빵거리니 앞에 있는 너 보행자가 양보해라"라는 댓글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계층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인도 주차이다. 보행자가 다녀야 할 인도에 떡 하니 차가 올라와 보행자와 장애인을 방해하며 주차하는 것이다. 왜냐? 차도에 주차하면 차한테 욕먹어서 무섭지만, 인도에 주차하면서 보행자에게 먹는 욕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개선 방안

한국의 교통 문화는 태어나자마자 발생하는 보행자의 권리보다, 돈으로 사는 자동차의 권리가 우선하는 미국 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제는 보행자가 먼저인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생애 첫 충격은 해외 출장

한 번은 룩셈부르크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같이 출장을 갔던 동료들은, 차가 멈춰야만 보행자가 건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저기 멀리서 오는 자동차를 발견하고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다가오던 차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다. 우리는 저 차가 고장나서 멈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 차는 보행자를 보고, "보행자가 먼저 건너기 전 까지는 운전자가 건너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놀랐던 것은, 반대편 차도에 있던 운전자도 모두 멈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룩셈부르크의 운전자는 횡단보도를 볼 때 마다 양쪽의 보행자를 모두 방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제발 보행자가 건널려고 하면 잠깐 서고, 고개를 돌리고, 그 뒤에 움직였으면 좋겠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시행규칙을 수정해서까지 바꾸려고 한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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